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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스페인

그라나다 시내 관광

2016.1.23


사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은 유럽에서도 1순위 였다. 가고싶은곳으로

그렇다고 자세히 아는것도 아니고 막연한 동경이었고 그냥 음악처럼

쓸쓸함을 느끼고 싶엇다. 그라나다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로

이베리아반도에서 사장 번성한 이슬람도시였으며, 이슬람 최후의 왕조가

잇던 곳이다. 1492년 카톨릭의 이사벨과 페르난도 왕의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

으로 그라나다가 함락됐다. 이후 이도시의 화려한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고,

 19세기 미국의 작가 워싱톤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성당, 원래 모스크가 잇던 자리에 세운 성당이다. 16세기부터 180년동안 공사를 해왔지만

탑은 아직 미완성이다. 초기에는 고딕양식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공사가 마무리 될때에는

르네상스,고딕 등 여러 양식이 뒤섞였다.

이틀을 숙박했던 에어비앤비 숙소, 알바이신지구 아래에 있다

옥상에는 이렇게 휴게 시설과 알함브라궁전이 조망이된다


1월이나 지중해라 이렇게 에쁜꽃도 피고...





집도 올망졸망 예쁘다



ㅂ바람이 불면 향이 날듯하다

좁은 골목길 그러나 에쁜길이다




카페나 음식점들은 늦게 문을 연다, 일찍 닫고...ㅠ







저녁때 보앗던 가로등

이사벨광장

신호등이 특이하다, 사람이 움직인다 ㅎㅎ


이게 문화인듯 싶다 어렵지만 전통인것...

시에서 운영하는 프리투어  영어 스페인어 여러가지로 해서 무료로 안내해준다

포르투칼 ,네덜란드도 프리투어를 이용햇는데 훨씬 세세한 내용과 역사를 알수 있어 좋다.

각 관광지로 가는 미니버스


프리투어하는 대학생들




이곳은 그라나다를 다니던 장사꾼들의 숙소로 사용 되던 곳이엇는데 전에는 창고로도 사용되고 물품을 거래 하던 곳이란다.

이 건물에 사용된 건축 자재가 매우 무른 재질 인데 오래도록 유지가 되는것이 매우 신기한 현상이란다. 그런데 이 재질이 알함브라 궁존을 지운 자재와 같다니 알함브라 궁전의 그 아름 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을 알아내는 방법을 강구 중이란다





보역활을 하는 것이 나무로 되어 잇다 헐....



알카세리아 거리 / 이슬람시대에  큰 실크 시장이엇으나 대화재로 상당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여기 안달루시아 지방은 여름에는 40도에 육박 하는 더위란다..그레서 좁은 골목길에서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었다고한다



람블라 광장

그라나다 대성당







대성당 옆문에는 사람들 이름이 가득 적혀 잇었는데.,..그때도 대학 들어 가기 힘들어 아들이 대학 들어 가면 아버지가 대성당 문에 자기 아들 이름을 써 놓아서 자랑질을 했다나




참 화려하다





왕실예배당 이 에배당에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이사벨과 그의 남편 페르난도 공이 잠들어 잇다.

국토회복운동을 마무리한 이사벨은 그라나다에 묻힐것을 희망해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1516년 사망햇다. 이곳에 안치된것은 5년후인 1521년이었다.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다. 유럽은 이런 길거리 악사들이 많다.  노숙자도  거지도...










이곳은 지금은 교회이지만...

몇번이나 용도가 바뀌었다., 기독교 시절에는 교회었다가 이슬람 시절에는 관공서가 괴었다가 관이 돈이 없어 사창가에 팔려 창녀촌이 되었다가 창년촌에서 저지른 죄(??)를 사하기 위해 다시 교회로...

지근 여기서는 24시간 기도하는 수녀님들이 기도하는 곳이다. 관광지로 개방 했는데..교회안에서는 여전히 수녀님들께서 기도 중임을 볼 수잇었다. 24시간 오로지 기도만...움직이지도 않고...

성당안은 고요하고 엄숙하다


알함브라성



산 크리스토발 전망대






이곳은 키스의 거리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 귀족의 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도 있었다. 결혼식 전날...늦게 까지 딸은 결혼의 꿈에 젖에 잇었다.

결혼식날.,.엄마가 방밖에서 딸을 불럿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다비 없어 방으로 들어 갓더니...딸이 죽어 잇는것이다.

결혼식날 주검으로 ㅈ발견 되다니..이게 무슨 일....너무도 슬퍼한 엄마 아빠는 딸의 주건 앞에서 망연 자실 할 수 박에 없었는데...엄마는 딸이 죽은것이 너무도 안타 까워 시신을 밖으로 옮겨 매장 하는것을 자꾸 미루기만 하다가,,박판에 마지막 키스나 해주려는데..고기를 숙인 순간...\딸이 미약하게 숨을 쉬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레서 흔들어서 갓금 맛사지를 하고 그래서 다시 살아 났다는 것이다..그때 당시에는 심장이 약간 멈추는 듯이 숨이 약해지는 병이 돌았는데..이걸 죽은 것으로 착각하여 매장 하는 바람에 뒤늦게 께어난 환자가 관에서 손톱으로 관을 긁기도 한 사태 까지 잇어 시체를 곧바로 묻지 않고 사흘간 두거나 세신의 팔에 방울을 다는것이 유행을 했다는데..

그때부터 이거리는 키스의 거리로 알려졌다. (* 모두 프리투어의 설명 덕분이다...)

ㄴ누에바광장 활기찬 거리이다. 노래도 부르고 광대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붙들고 공연을 한다.

아프리카에서온 사람들로 단속반이 오면 삼각줄로 묶은것을 땡기면 보따리가 된다. 그다음은 줄행랑 ㅎㅎ 안스럽기도 하다

스페인은 거의 큰개들을 키운다. 개들이 촐싹대지도 않고

지가 사람인양 조용히 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광대가 행인과 같이 공연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