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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는길

순창 강천사

 2017.5.13

강천사

887년(진성 여왕 1)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불교의 전파를 위해 전국을 수행 다니던 중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광덕산(廣德山) 줄기에 호남의 금강산으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의 기암절벽과 굽이굽이 맑은 물이 사계절을 흐르는 천고(千古)의 빼어난 절경에 강천사[옛 이름은 복천사(福川寺, 福泉寺)]를 창건하였다.

당시에는 강천사를 중심으로 국가적으로는 호국 사상과 개인적인 기복 신앙 및 인과응보적 업설이 불교의 전생설과 습합(習合)되어 매우 빠르고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강천사에 소속된 암자로는 명적암(明寂庵)·연대암(蓮臺庵)·용대암(龍臺庵)·왕주암(王住庵)·지적암(智積庵)이 있었다. 특히 왕주암은 고려 왕 태조(太祖)[918~943년 재위]가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할 때 먼저 후백제(後百濟)를 견제하기 위하여 후방 요충지인 금성(錦城)[지금의 나주]을 점령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에 태조가 이 절에서 머물렀던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왕주사라 명명하게 되었다.

1316년(충숙왕 3) 덕현 선사(德賢禪師)가 오층 석탑과 12개의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조선 시대 1482년(성종 13)에 작성된 「강천사 모연문」의 기록을 통해 강천사가 이 해에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씨의 시주를 받아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강천사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불타 없어지게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에 태능(太能) 소요 대사(逍遙大師)가 중창하면서 옛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1760년(영조 36) 경진판 『옥천 군지(玉川郡誌)』에 의하면 강천사는 불전이 3개소, 승방이 12개소이며, 명적암·용대암·연대암·왕주암·적지암 등 강천사에 속한 암자가 12개가 있었으며 그 당시 500여 수도승이 살던 대거찰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1855년(철종 6) 금용당(金容堂) 선사에 의해 중창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보광전, 칠성각, 첨성각의 당우가 모두 불탔다. 당시 강천사에는 비구니들이 주로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 창건자 도선 국사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되고 도량이 정화된다.”라는 예언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 후 승려 김장엽이 1959년에 새로 중창하였고, 1992년 보광전을 대웅전으로 바꾸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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